

" 헤어지자. "
그 말을 듣는 순간 오쿠야스는 고개를 들어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죠스케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앉아있는 카페 안의 풍경은 방금 전과 다름없이 평화롭게 흘러가고 옆 테이블에 앉은 여고생들은 재잘거리기 바빴다.
막 시킨 음료들은 아직 따뜻하고 포근한 연기를 만들어 내었고 디저트 장식으로 올라간 곰돌이 모양 초콜릿은 방긋 웃는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법 쌀쌀해진 바람은 자신도 따뜻한 카페 안을 들어가려고 하려는 듯 투명한 창가에 몸을 기대어 소리내기 바빴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자신의 옷매무새를 고쳐입고 갈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오쿠야스는 눈만 깜빡이며 죠스케를 응시했다.
또 멍청한 자신이 말을 잘못 들은 게 틀림 없으리라. 뒷머리를 긁적이고 죠스케에게 다시 물어봐야겠다라고 생각하며 미소를 띄운채 입을 열었다.
" 죠스케. 뭐라고 했... "
" 헤어지자고 "
자신이 멍청하길 바랬는데. 아니길 바랬는데.
오쿠야스는 본인이 생각보다 똑똑하다는 사실이 원망스럽긴 처음이라 생각했다.
전혀 상상하지 않았던 일은 아니다.
어릴적 부터 남들의 눈치를 보며 살던 탓인지 아니면 사교성이 없는 탓인지 오쿠야스는 무의식적으로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과의 이별을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할지라도 언제라도 돌아서고 떠날 수 있다고 그것에 집착하는 건 본인에게도 그 사람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라고, 늘 버릇처럼 중얼거려왔던 말 이였다.
그래서 처음 죠스케를 만나 친해지고 관계를 맺어 갈 때에도 늘 이별하는 모습을 그리곤 했었다. 그렇기에 죠스케에게 사랑의 감정을 가졌을 때도, 자신의 감정을 고백할 때에도 언젠간 닥쳐올 이별을 남몰래 준비하던 오쿠야스였다.
그런 오쿠야스는 죠스케와 보내는 시간이 하나 둘 늘어갔다. 그 불안함을 고독을 의지 할 수 있을 만큼 죠스케는 다정하고 달콤했다. 일상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것에 처음으로 감사함을 느끼고 그런 죠스케가 원하는 무엇이든 이루어지길 바랬다.
하지만 현실은 오쿠야스의 생각처럼 그리 다정하지 않았다.
이별이라는 현실은 오쿠야스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거칠고 성급하게 비참함의 심해로 오쿠야스를 끌어당겼다.
여러 감정이 뒤섞여 혼란스러운 눈동자로 죠스케를 눈 안에 담았다. 오쿠야스의 눈동자엔 무표정한 죠스케의 얼굴만이 담겨 있었을 뿐 이였다.
멍청하게 눈치가 없어서 사람의 감정을 못 읽는다고 습관처럼 오쿠야스의 말처럼, 오쿠야스에겐 죠스케의 감정이 전혀 읽혀지지 않았다.
환하게 웃으며 들썩이기 바빴던 입꼬리는 차분히 가라앉아 있고 푸르른 은하수를 담던 눈동자엔 칠흑의 어둠처럼 아무런 감정이 담겨져 있지 않았다.
죠스케가 아침마다 손질하느라 애쓰는 헤어스타일은 여전히 완벽했고 아침마다 어머니가 다려주었을 교복 역시 평소와 다름없이 깨끗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하교 길에 카페에 들렸다. 평소처럼 달디 단 디저트와 따뜻한 음료를 시켰다.
달라진 건 그들 사이의 거리일 뿐, 너무나도 평소와 다름이 없는 평범한 일상 이였다.
" ..푸하하!... 갑작스럽게 무슨 얘기냐..? "
입술이 떨리는 걸 숨기기 위해서 일부러 크게 웃음 지으며 죠스케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길 바랬다. 장난이라고 말하면서 완전 겁쟁이네~라고 놀려주길 바랬다.
" 전부터 많이 고민했는데. 널 친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
이미 솔직한 성격은 알고 있었지만 그 한 치의 티끌도 없는 말에 오쿠야스는 산산히 부서져 내렸다. 그 맑고 선명한 눈으로 이렇게 잔인한 말도 할 수 있었구나, 새삼스럽게 알아버린 죠스케의 모습에 오쿠야스의 입가엔 씁쓸한 미소만이 자리 잡았다.
눈물이 나고 힘들어 할거라 상상 했던 모습과는 달리 눈물이 나지 않는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 찰나에도 괜히 죠스케의 앞에서 울었다간 죠스케가 더 힘들어 할거라 생각한 덕분인 듯 했다.
" 갑작스럽네 쨔샤. 미리 티라도 내지 그랬어- "
" 미안...그동안 많이 고민했었어... "
다른 사람이 보면 마치 오쿠야스가 이별을 고한 것 같은 풍경이었다.
장난스러운 말과 함께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죠스케를 바라보는 오쿠야스와 그런 오쿠야스를 똑바로 바라보지조차 못하고 덤덤하게 말을 이어가는 죠스케.
북적이고 따스한 카페 안 풍경들은 어느새 그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풍경이 되어가고 있었다.
다른 테이블에서 재잘거리는 소리와 식기들이 달그락 거리는 소리만 울려 퍼질 뿐 그들은 오랫동안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얼마나 기나긴 침묵이 이어졌을까 오쿠야스가 먼저 말을 꺼냈다.
" 나도 집에 가야하니까 이만 일어나자 죠스케, 아 참! 오늘 한턱 쏴줘서 고마웠다!! "
크게 웃으면서 평소처럼 죠스케의 등을 두드리기 위해 손을 내밀었던 오쿠야스는 이내 손을 거두곤 머쓱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죠스케도 아무 말 없이 그런 오쿠야스를 바라만 보다가 카페 문을 열었고 그들은 각자의 집으로 가기 위해 길거리로 나왔다.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에도 죠스케와 오쿠야스는 서로를 바라보지 않았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괜시리 길가의 돌멩이를 툭툭 차보기도 하고 날아가는 새들을 눈동자로 쫓아보기도 했다.
느리게 흘러가던 시계바늘은 어느새 흐르고 흘러 죠스케의 집과 오쿠야스의 집을 나뉘는 골목에 다다랐다.
그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손을 들어 가볍게 흔들고 몸을 돌렸다.
다른 방향으로 걷는 두 사람의 걸음은 느렸지만 죠스케에게도 오쿠야스에게도 그 걸음은 도망치듯 서두르고 무겁기만 한 걸음들이였다.
집에 도착한 오쿠야스는 녹슬고 헤진 대문에 적힌 글자를 습관처럼 눈으로 읽으며 문을 열었다.
'출 금지' 매번 읽지만 우습기만 한 글자들. 피식 미소 지으며 문을 연 오쿠야스는 잡초가 무성한 마당을 지나 현관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약간의 먼지가 흩어지고 열려진 문을 따라 들어온 빛들이 어두운 현관을 비추어 반짝 거렸다. 집안에서 싸움을 했을 때 부서졌던 바닥의 일부분은 여전히 덜렁거렸고 밟을 때마다 삐걱 소리를 내고 있었다.
집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 위층으로 올라가자 바닥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가 오쿠야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모든 대화를 주고받을 순 없지만 이젠 간단한 의사소통 정도는 가능해지다보니 자신의 감정을 많이 표현하시는 모습이 흡족하고 좋았던 오쿠야스 였다.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아버지의 상자 안에 담긴 사진을 꺼내들어 어머니와 형에게도 다녀왔다며 인사를 했다. 옥상으로 치워놨던 살림살이들을 꺼내 오기위해 먼지쌓인 낡은 사다리를 타고 유리문을 열었다.
지난번에 유리가 깨진 이후로 아예 미닫이 형식으로 바꾸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옥상에 올라온 오쿠야스를 서늘하지만 시원한 공기를 크게 들이마셨다.
형의 죽음을 본 장소이지만 이 사건 이후 오쿠야스에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슬프고 고독했던 만큼 주변을 돌아보고 더욱 단단하게 자신을 굳혀나갔다. 이젠 오히려 형을 보고싶을때 올라오곤 할 정도로 말이다.옥상에서 필요한 것을 꺼내고 밑으로 내려간 오쿠야스는 저녁준비를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요리엔 통 소질이 없는지라 곧잘 망치기 일쑤였던지라 토모코씨가 보내준 반찬이나 가게에서 사온 음식들로 끼니를 자주 때우곤 했었다. 익숙하게 담겨져 있던 반찬들을 꺼내고 오늘은 색다른 반찬을 해보리라 자신감에 불타 야채를 썰기 위해 칼을 들어보았다.
분명 책이나 티비에서 다른 사람이 하는 걸 볼 때는 쉬워 보이기만 했던 칼질인데 왜 본인의 손에만 들어오면 어렵기만 한건지. 엉성한 솜씨로 대출 칼을 썰어대다가 그만 손가락을 베이고 말았다. 다급하게 손가락을 들어 자신도 모르게 주위를 살피다가 이내 자신의 입안으로 넣어 간단하게 지혈을 시키며 역시 실패인가~ 라고 중얼 대는 오쿠야스였다.
부엌으로 들어온 아버지도 그릇들을 나르며 저녁준비를 돕고 데운 반찬들과 밥으로 차려진 밥상은 평범하지만 따뜻했다. 아버지와 단출하지만 따뜻한 저녁식사. 수저통에 꽂혀있는 젓가락 한 세트는 이제 넣어도 괜찮겠네. 라고 생각하며 밥을 먹은 오쿠야스는 뒷정리를 하면서 탁자 깊숙히 젓가락을 올려두고 나머지 그릇들도 대충 정리한 후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방문을 열고 들어와 바닥에 이리저리 널린 잡동사니들을 발로 치워내고 낡아서 빛이 바랜 이불사이로 들어와 편하게 자리를 잡은 오쿠야스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저녁밥도 잘 먹었고 내일은 선생님의 간섭 없이 푹 잘 수 있는 과목들이 잔뜩 들은 날이다.
마침 창가자리에 배정도 되었겠다, 수업시간엔 늘어지게 한숨 자고 쉬는 시간에 옆 반에 놀러 갈 생각에 부풀었던 오쿠야스는 문뜩 이젠 놀러갈 곳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버렸다.
' 아. 헤어졌지 '
눈 앞이 뿌옇게 변해가는 느낌에 오쿠야스는 두 손으로 눈을 부벼 댔다.
어지간히도 큰 먼지가 들어간건지 힘차게 두 세번 문질러대도 여전히 눈앞은 흐리기만 했다.
집이 오래되어서 먼지도 많은 것이라고 피식 웃으면서 눈을 문질러 대던 오쿠야스는 두 손이 점점 느려져갔다. 두 손이 완전히 멈추었을 때, 그제서야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눈 안의 먼지를 털어 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 버렸다.
볼을 따라 무언가가 흐르는 느낌에도 그저 이불을 두 손으로 꼭 쥔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왜 이제야 눈물이 나는 걸까. 아까 죠스케를 직접 볼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아무렇지 않았는데,왜 이제 와서야 이렇게 아픈 걸까.
그들이 친구가 된지는 분명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간이 무색하게도 오쿠야스의 일상 속엔 죠스케가 너무나도 많이 녹아들어있었다.
오쿠야스의 집안 이곳저곳마다 죠스케와의 추억이 보였고 죠스케의 물건들 역시 원래의 자리 인것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자신의 성별이나 출신, 가족관계의 문제였다면,
혹은 자신의 신체조건이나 성격의 문제였다면,
차라리 다른 이유였더라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그 잔인한 진실만 아니였다면.
얼마쯤 울었을까, 이내 지쳐 잠들 찰나에 눈에 들어온 죠스케의 목도리.
춥다고 중얼거리듯 말하자 가벼운 잔소리와 함께 둘러주었던 새빨간 목도리.
그리고 목도리를 둘러주며 환하게 웃어보이던 죠스케의 미소.
이제 다시는 되돌아 갈 수 없는 그 추억들만이,기억들만이 텅빈 오쿠야스의 안을 채워내고 있었다.